AI 시대의 노동의 가치

바야흐로 대 AI 시대입니다.

무슨 게시글을 보든, 무슨 뉴스 기사를 보든 AI 이야기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한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 나왔을 성과들이 이제는 하루걸러 하루씩 쏟아집니다. 새로운 모델이 나오고, 새로운 기능이 나오고, 새로운 논쟁이 생깁니다.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피로할 정도입니다. 굳이 여기에 제 한 줄을 더 보태서 누군가에게 피곤함을 전가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머릿속이 꽤 복잡해졌습니다. 그리고 전 원래 글을 쓰지 않고서는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머리가 복잡한 게 첫 번째 이유고, 안 쓰면 정리가 안 될 것 같다는 게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래서 염치없이 아시타비의 심정으로 몇 자 적어보게 됐습니다.

사람들과의 사석에서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전 인간의 태생적 고귀함이나 신성함 같은 개념을 믿지 않습니다. 천부인권 같은 개념도 결국 인간 사회가 인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훌륭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고귀한 이유는 인간들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독보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를 만들고, 과학을 만들고, 예술을 만들었습니다.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문명을 만들고,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존재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신비롭거나 초월적인 무언가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결국 긴 진화의 시간 동안 획득한 고성능 생물학적 하드웨어와 그 위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차갑게 표현하자면 생명은 신성한 존재라기보다는 매우 정교한 생체 기계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그 기계는 꽤 쓸모가 있었습니다. 인류는 농업혁명을 만들었고 산업혁명을 만들었습니다. 도시를 만들고 국가를 만들고 인터넷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을 흉내 내는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인간에 필적하는 지능적 존재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공상과학에 가까웠습니다. 빌 게이츠나 일론 머스크가 앞으로 노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을 때도 그저 돈 많은 사람들의 미래 잡담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처음으로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이미 마지막으로 코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작성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반 년쯤 된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지금도 코드를 읽고 수정하고 디버깅합니다. 하지만 작성은 잘 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설명하면 AI가 초안을 만듭니다. 함수도 만들고, 테스트 코드도 만들고, 문서도 씁니다. 예전에는 제가 만들고 컴퓨터가 실행했습니다. 지금은 AI가 만들고 제가 검토합니다. 물론 아직은 인간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것도 인간이고, 결과에 책임지는 것도 인간입니다. AI가 아직 못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제 중요한 건 현재 시점이 아닙니다. 방향성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 방향이 꽤 명확해 보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AI 자체보다 다른 질문이 더 머릿속을 맴돕니다.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우리는 오랫동안 지능을 근거로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생각할 수 있고, 창작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간다움의 근거로 삼아왔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들이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만약 노동도, 창작도, 연구도, 발명도 AI가 더 잘하게 된다면 말입니다. 인간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보다 뛰어난 지능적 존재를 만들어내는 종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인간은 더 이상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존재가 아니게 됩니다. 그때 인간은 스스로를 어떤 존재라고 정의하게 될까요.

사실 제가 복잡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거창하게는 인간이라는 종 전체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노동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생산성은 어떤 가치를 갖게 될지, 인간은 무엇을 근거로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될지 말입니다. 그런데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것보다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뭘 하게 되는 걸까? 개발자로 살아오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서 적지 않은 즐거움을 느껴왔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더 좋은 구조를 고민하고, 더 좋은 코드를 만드는 과정 자체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앞으로의 세상에서 그 일들의 상당 부분을 AI가 더 잘하게 된다면 저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걸까요. AI를 만드는 사람이 될까요. AI를 관리하는 사람이 될까요. 아니면 AI가 만든 결과물에 최종 책임을 지는 검토자가 될까요. 아니면 지금은 상상조차 못하는 전혀 다른 역할이 생기게 될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AI가 무섭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세상이 망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저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을 직접 겪은 사람들도 아마 비슷한 기분이었을까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그 끝이 어디일지는 알 수 없었던 그런 기분 말입니다. 다만 너무 흥미로운 시대라서, 인간이라는 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중간에서 저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